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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우리 모두 죄인이 아닌가?

박은지

박은지 갤러리아트14 공동대표 / gallery-art-14@naver.com


황금 벌판과 붉은 낙엽이 한 계절의 깊이를 더해가는 11월, 전남 광양의 도립미술관을 찾았다. 이태원 압사 참사, 미사일 도발 등 이렇게 싸늘한 분위기에선 스스로 차분한 명상의 길로 안내할 영혼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마침‘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10.6-2023.1.29, 전남도립미술관)의 도슨트 해설이 시작되었으나 친절한 설명을 통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 대신 작품을 순수하게 감상하고 싶은 욕심에 따라가지 않았다.



좌) 우리 모두 죄인이 아닌가?, 1920-1929, 유채, 잉크, 과슈, 102×73cm ⓒ 조르주루오재단 소장
우) 전시 입구


첫 번째 섹션은 루오가 생전에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에 대한 초상이 판화로 제작된 모습을 발견하여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여인들과 정물, 풍경 회화를, 세 번째 섹션에서는 인간의 영혼에 외치는 <미제레레> 시리즈 판화, 네 번째 섹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담은 그림들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의 삽화들이 소개되어 있었으며, 1949년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독립적인 방에서 감상할 수 있었고, 다섯 번째 섹션에서는 서커스와 광대를 주제로 한 작품들과 마주할 수 있었으며, 관람객을 비추는 3단 거울형 파티션에서 ‘우리 모두 광대’라는 루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였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연계전시로 ‘조르주 루오와 한국미술’(10.6-2023.1.29)이라는 테마 아래 한국 근·현대 화가 약 20인의 작품을 엄선하여 펼쳐 놓았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는 검은 테두리의 굵은 선과 서예적인 필치와 자유분방한 색채 등이 구본웅, 이중섭, 배동신, 강용운, 박고석, 권순철의 작품에서 드러나는가 하면, 김재형 등의 작가들이 관심을 두고 그려낸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루오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따지는 일이 무색한 것이 1920-30년대 일본 미술계를 통해 받아들이게 된 루오 작품의 이미지와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동신이 일본에서 루오의 작품을 온종일 스케치했다는 증언이나, ‘동방의 루오’라 불리웠던 이중섭이 루오를 실제로 좋아했다는 기록들은 루오와 한국미술의 관계를 촘촘하게 해주는 기반이 되고 있었다. 한국 작가에 대한 설명이 작품 명제표 옆이나 아래에 길게 설명되고 있었으나 글씨가 작고 보는 위치가 낮아서 관람하는 내내 불편했던 점이 아쉽게 생각된다. 전시서문에서 연구와 기획의 모호한 한계를 미리 밝혔다 하더라도, 작은 유인물 출력 등으로 관심있는 관람객들에게 제공되었더라면 루오와 한국미술 간의 연구가 조금 더 진전될 수 있는 불씨를 마련하는 일이 되었으리라 사료된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인간 군상들에 대해 면밀한 애정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던 루오의 예술 세계를 잠시나마 들여다보며 그의 절절한 기도를 느껴본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하고 예술로 승화한 <미제레레> 시리즈는 어느 신문기사에서 보듯이, 하나의 미사를 드리는 것과 같은 전율을 체험토록 하고 있다. 지금은 희생된 청춘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과 부상자의 일상 회복을 돕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때다. 낮은 자세로 우리 모두 경건한 마음가짐을 정돈해나가야겠다.

두툼한 검은색 선을 과감하게 터치하여, 공간을 구획하고 그 공간에 심리적 담론을 담아내고, 면면의 색채를 두꺼운 한 획으로 상호조화를 이루어낸 마력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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